아포칼립토
감독 멜 깁슨 (2006 / 미국)
출연 루디 영블러드, 달리아 헤르난데즈, 조난단 브리워, 라울 트루질로
상세보기



"위대한 문명은 외부의 침입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에 내부로부터 먼저 붕괴된다" - 윌 듀런트


 영화 시작부터 문제다


우리가 다소 생소한 이야기인 마야문명을 매우 적나라하고 파격적으로, 그리고 긴장감있게 그린 [아포칼립토]는 그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 영화 제작사의 로고가 지나가기 무섭게 논란의 여지를 보여준다. 윌 듀런트의 인용문을 넣지 않았다면 영화는 단순한 액션영화로서의 완성도와 흥행성, 그리고 당시의 문화를 뛰어나게 묘사했다는 부분에서 호평
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윌 듀런트의 일용문 한줄로 이 영화를 선택할수도 있다.
 


문명을 판단하는 왜곡된 기준. 그것은 일반화된 서구의 시선.


각 민족, 혹은 국가, 혹은 문명마다 각자 특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또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명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영화 "로빈슨크루소"의 첫장면이 생각이 난다. 무인도에 떨어진 친종교적인 로빈슨은 해변에서 원주민들이 사람을 먹는 장면을 보고 "죄악"이라 생각해 원주민을 죽이다. 그 중 한명의 원주민을 살린 뒤 자신의 노예로 사용한다. 그때 원주민은 "친구가 죽으면 그 시신을 먹어야 친구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간다"라는 특수한 문화를 이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혹은 인간적 관점에서 "식인"의 행위는 말할 필요 없이 죄이지만, 문화적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 원주민들의 관습일 뿐이다. 이것을 나쁘게 보고 그들을 "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화의 상대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들의 기준을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이었을 시절,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영향을 꽤 커다란 것이다. 우리는 미국(혹은 서구)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인식하며 살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상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구적인 기준으로 변해왔다. [록키]는 소련 사회주의자를 쳐부수는 정의의 사도였고, "백인만 도와주는" 슈퍼맨은 우리의 영웅이었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유적을 훼손하는 도굴꾼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에 열광했다. [아포칼립토]는 그러한 시선을 가진 자들이 만든 기만적인 영화다. "신대륙발견"이라는 건방진 생각의 왜곡된 역사를 아직도 부르짖는 그들은 영화속의 마야문명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동물"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영화 도입부에 인용문을 삽입,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겁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이런 파렴치한 행위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높은 영화적 완성도, 짜증나는 그들의 논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완성도과 굉장히 높다. 사실적인 고증과 묘사로 그 어떤 영화보다 집중하기 쉽다. 또한 영화 중후반부터의 추격씬은 아마 몇년간 영화인들에게 회자될만한 명장면일 것이다. 언어도 영어가 아닌 마야의 언어(확실하진 않다)를 사용한 것도 과감한 시도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보다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영화가 그 사회 혹은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뻔뻔한 궤변을 당연하다는 듯이 외친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들의 논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화된다. [unite 93]에서의 패트리어티즘, 뻔뻔하게 돌아오고 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록키 발보아] [슈퍼맨리턴즈] [인디아나존스4] [다이하드4]. 우리는 이러한 팍스아메리카나를 외치며 돌아오는 복고 영화들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문화적 영역에서의 그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그리고 뻔히 보이는 미패권주의(혹은 미우월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알고는 있나....진정한 야만은 너희들이라는 것을...


 이런 뻔뻔하고 창피한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간다면, 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멀쩡한 원주민이 있는 대륙을 "신대륙"이라 자처하며 문명을 파괴하고, 인디언을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학살하고, 각 국가의 전쟁을 조장하며 무기를 팔아 부를 축척하고, 노근리에서 우리민족을 학살하고, 베트남, 파나마,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등등등등 에서 학살을 자행한 너희들이야 말로 진정한 "야만"이다. 


※ 이 글은 2007년 2월 9일 본인의 미니홈피에 포스팅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Posted by 지풍산
:
 
스파이더맨 3
감독 샘 레이미 (2007 / 미국)
출연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토퍼 그레이스
상세보기

 
▲우리의 피터파커가 어떻게 변해서 돌아온 것이냐?
 
기존의 영웅과는 다른 스파이더맨!
 
영화는 항상 그랬다. 악당은 있지만 태생이 악한 사람은 없다. 변종거미에 물려 뜻하지 않은 힘을 가지게 된 피터는 자신의 생활고에도 꿋꿋히 악당을 잡으러 다닌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다. 좋아하는 여자를 싫다고 해야하고, 학업성적은 떨어지고, 직장을 잃고, 한번 쯤 포기해야 겠단 생각에 포기도 해보지만, 몸속의 정의로움과 거미의 힘은 그를 다시 영웅질의 파도속에 떨구어 놓는다. 가장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영웅. 점점 성장하는 그가 이제 정치적 코드를 살며시 적셔놓은 평범한, 아니, 기만적인 3편으로 되돌아 왔다. 파커가 변한것은 아니겠지.....
 
 
 
▲여전히 굉장한 포스와 스케일을 보여주는 액션장면!
 
악당이 너무 많아!
 
뉴고블린은 초반에 처리하고, 샌드맨도 얼추 정리하는데 베놈이 문제다. 외계에서 온 기생충은 피터에 붙어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면서 복제한다. 비행청소년이 된 파커는 시덥잖은 건방을 떨며 스스로의 적을 만들어 내고 결국 베놈이라는 악당을 만들어 낸다.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발버둥을 치면서 다소 산만하게 진행된다. 결국 베놈과 샌드맨, 고블린과 스파이더맨의 태그매치라는 다소 유치하고 저학년스러운 대결구도, 거기다 뉴스로 생중계 된다는 소박한 영웅을 대중적 영웅을 만들어 내기위해 다소 진부한 장치까지 보여준다. (하긴, 영화가 애들보라고 피도 안튀더라...)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건방진 파커의 반성과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책임만은 아니다.
 
▲재수없이 사람죽이고 괴물이 된 샌드맨!
 
이라크전쟁을 반성하고 정의로운 미국으로 돌아와라??
 
어느 리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국가인 미국(영화에서는 성조기를 짜집기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스파이더맨이다)이 이라크전쟁(혹은 수많이 일으킨 중동전쟁)이라는 실수로 스스로의 정의를 버리고 타락했다.(검은 옷의 스파이더맨을 이야기한다. 옷의 색이 검은 것은 중동의 기름을 탐하는 미국의 메타포라 한다.) 그러니 스스로의 잘못을 어서 수습하고 예전의 정의롭고 강한 미국으로 돌아오라! 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샌드맨은 중동의 모래바람을 형상화한 캐릭터이고 마지막 대결에서 거대해진 샌드맨은 스파이더맨으로서는 (미국) 어찌할 수 없는 상대이니 싸우지말고 화해(혹은 용서)하라 한다. 어찌보면 그럴싸 한 해석이다. 하지만 미국이 강하긴 해도 정의로운 적이 있었던가???
 
▲그래. 이 모습은 부시랑 좀 닮긴 했다.
 
 
기만적인 메세지로 대중을 현혹하지 마라!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면 가득 펄럭이는 성조기를 볼수 있다. 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미국의로의 귀환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위에서 질문했듯 나는 미국의 정의로운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불한당같은 미국(지금도 미국은 전세계에서 5~6개의 전쟁과 내전에 관여하고 있다.)은 전혀 정의롭지 못하다. 영화가 이미지로 보여주는 정치적 메타포는 그럴싸하고 포장되어 있다. 물론 감독이 부시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세지로 단순히 생각하면 되겠지만, 영화의 파급력을 본다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유는 명료하다.
 

▲베놈(부시)이 목을 죄는 것은 미국(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전세계의 민중이다!
 
 
미국에 대한 반성없이 전쟁(미국이 일으킨)만 반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본성이다. 전세계를 미 일방주의(혹은 패권주의)로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미국의 본성은 근대적 제국주의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욱 간교한 침략을 계획하고 실현한다. 독재를 막고 대량살상무기를 회수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이라크전쟁은 결국 미국의 기름욕심때문에 일어난 침략전쟁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통째로 삼키려는 FTA도 미국의 침략수단 중 하나이다. 이러한 미국의 본성을 바로보지 않고 미우월주의를 저변에 깔아놓고 "전쟁을 반성하고 그만두어라!"라는 식의 기만적 반성의 메세지는 오히려 극단적인 우월주의의 표현보다 위험하다. 그들의 논리에 현혹될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로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영화속의 메세지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정치적 입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이데올로기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물론 감독 혹은 제작자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될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볼 이런 영화(흥행이 잘 될수 밖에 없는)를 바라볼 때, 그들의 논리에 휘말리거나 혹은 기만적 술수에 말려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파이더맨3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태도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견지해야 한다.


※이 글은 2007년 6월 4일 본인의 미니홈피에 포스팅한 글을 올린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Posted by 지풍산
:

우린 액션배우다
감독 정병길 (2008 / 한국)
출연 권귀덕, 곽진석, 신성일, 전세진
상세보기


[우리는 액션배우다](정병길 감독 2008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꿈들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삶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 꿈의 무게는 꼬꼬마 시절 뜬구름과 같다면 세상을 조금씩알아가는 나이가 되고, 또 그 세상에 한발 들여놓게 되는 순간, 뜬구름은 그 크기에 비례하는 질량으로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꿈꾸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이한 삶을 살면서 그 꿈을 다시 뜬구름과 같이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아, 그렇게는 안되야 되는데.

꿈을 쫓는 사람들, 그 용기에 박수를..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액션배우들의 삶에 대한 다큐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보는 배우가 아니라, 위험한 스턴트를 하는 액션배우들이다. 예상대로 그 배우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촬영은 매우 위험하다. 차를 뒤집어야 하는 스턴트와 배우 대신 맞아야 하는 연기, 우리가 영화에서 "위험하다"라고 느끼는 대부분의 장면을 이들이 대신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기는 그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제발로 걸어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액션스쿨 8기 60여명이 지원하고 36이 합격, 이중  한달만에 16명을 제외하고 다 제발로 나갔다. 그리고 4년이 지나고, 스턴트를 하는 8기들은 단 3명이다. 액션배우를 꿈꾸다 영화 감독이 된 이 영화의 감독은 자신의 경험과 동기들의 삶을 거친 화면속에 담는다.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재밌지만 그 속에 담긴 액션배우들의 삶은 적당하지 않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장면을 이들은 웃으면서 해치운다. 왜일까. 그것이 그들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섭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진 중 선글라스를 낀 배우는 권귀덕. 영화 [괴물]에서 한강으로 뛰어든 배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카 스턴트의 지존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무섭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일을 시작해서도, 하고 있어도 안되죠." 5년전 차에 치이고 멀쩡하게 일어나는 자신을 보고 스턴트를 꿈꾸게 됐다는 그는, 8기 액션스쿨 학생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영화 [놈놈놈]을 찍다가 당시 무술감독이었던 고 지중현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3명중 2명이 일을 그만둔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은 꿈을 버리고 패배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들을 보여준다.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그들, 모두 한번씩은 저승사자와 악수를 하고 돌아온 그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들을 '배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사실에 그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크기. 그들의 이야기. 꿈을 쫓는 자의 아픔. 그리고...

각자의 사연은 다 있다.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을 비추어 주고,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얼마나 꿈에 가까워 지려 노력하고 있는가. 얼핏 보면 생각없어 보이고, 양아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할짓 없어 몸굴리며 산다고 할 수도 있다. 죽으려고 발버둥 치는 얼치기로 보이기도 하다. 그렇게 비춰지는 모습들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이고 아픔이다. 꿈을 쫓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 현 사회의 굴레속에 천대받는 직업. 그리고 그들에 대한 편견. 얼마만큼 열심히 살아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편견을 영화는 조심스레 경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모두 액션배우다 라고. 그리고 그 액션배우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당당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자.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을 비추는 고마운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하나다. 영화 속 허구들이 너무 허무맹랑하다면 이러한 좋은 기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예를 들어 트렌스포머를 보면서 무엇을 비춰야 하는가?) 우리의 삶과 조금이라도 엇비슷 하다면 이러한 좋은 기능을 100% 발휘한다. [우리는 액션배우다]라는 영화는 이러한 점에서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꿈을 쫓아 가는 나의 모습. 어떠하나. 권귀덕 배우가 이야기 했던 "죽음이 무섭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이란 말에서 나도 이런 각오가 되어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아직 부족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권귀덕이라는 액션배우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미친듯이 좋아서 행복한 사람. 행복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하는 배우. 그 액션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죽음을 무서워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꿈을 쫓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그것은 나의, 혹은 우리의 삶에서 희석되어 가는 꿈을 잡으라는 일종의 경고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자세이다.

Posted by 지풍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