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 2011. 3. 29. 16:33 |

 

 

강원도 산골짜기. 전쟁이 터져도 감자밭을 파헤치는 멧돼지가 더 걱정인 사람들. 아이들처럼 막 뛰어다니라는 의미의 마을이 동막골이다.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 영화는 분단의 아픔을 순수하고 환상적으로 그려낸 동화 같은 영화의 백미는 역시 강혜정을 비롯한 순수하고 어눌한 강원도 산골마을의 주민들이다. 총을 모르고 전쟁을 모르고, 고기도 먹지 않는 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잔인하게 상처받은 국군과 인민군을(그리고 미군까지!!) 순순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려버리는 포스를 자랑한다.

 

동막골의 비극은 그들에게 동화된 연합군(?)의 희생으로 지켜지고 마지막 순수한 인간과 공동체는 영화속에서 신비의 마을로 남겨진다. 물론, 가상의 공간이고 영화적 묘사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이곳저곳에서 만나는 나이 지긋하신 우리의 어르신들과 많이 닮아있다.

 

동막이라는 지명은 전라도에도, 인천에도 그리고 강원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얼마나 발음하기 신나는 이름인가. 동막리. 동동동도로동동막리.

 

그러나 동막리는 요즘 마을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며 안타깝고 열받는다.특별한 연고도 없고 강원도에 동막리가 있는지 알게 된 지도 6개월이 체 되지 않았지만, 역시나 먹먹하고 답답하고 안타깝고 열받는다.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는 요즘 언론에도 많이 나온다. 지방세를 목적으로 홍천군에서 추진하는 골프장 예정부지로 선정된 곳이 동막리다. 강원도가 어떤 곳인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좋은 곳 아닌가. 주요 산업은 농업이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이곳 저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며 수도권 및 전국 여행객들의 입맛에 쏙 들게 개조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넓디 넓은 강원도 산골짜기 존재하는 작은 단위의 마을엔 까막딱따구리, 하늘다람쥐, 삵, 수달, 단비, 먹구렁이 등등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수려한 산림과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동막리 역시, 그런 아주 살기좋은 마을 중 하나다.

 

아이고, 그러나 돈에 눈 먼 지방정부와 사업자들은 이 보기좋고 살기좋은 자연이 그저 파헤쳐야 할 개발대상지로만 보이겠지요. 동막리는 지금 수려한 산림을 밀어버리고 몇몇의 가진 자들의 라운딩을 위한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들의 눈에는 하늘다람쥐도, 수려한 산림도, 아름드리 나무도, 살고 있는 주민도 보이지 않는가 보다. 돈 몇푼 쥐어주고 나가라니, 못 나간다는 주민에게 돈이 부족하냐는 천막한 질문을 던지는 이놈들에겐 강원도는 대한민국의 허파이자 산림자원의 보고가 아닌 개발이 안된 낙후한 지역이고, 주민들은 그저 원주민일 뿐일게다.

△ 골프장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삼척에도 동막리가 있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삼척시장의 아주 위대한 공약이었던 ‘친환경 생태마을’로 선정된 이곳은 우렁이농법을 이용하여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이를 특화시키기 위한 아주 바람직한 정책의 대상지이다. 얼마나 좋은가, 농약으로 인한 오염과 피해를 줄이고 지역주민의 소득까지 올리는 이런 정책.

 

아이고, 이런. 삼척시장은 생각이 없나보다.

 

삼척시 근덕면은 지금 강원도의 ‘뜨거운 감자’인 핵발전소 유치 예정지역이란다. 재밌는 것은 그 예정부지 길 건너 바로 ‘동막골 친환경 생태마을’이라는 것이다. 아니, 친환경이라면서 핵발전소를 옆에 유치하려 한다니. 역시 내 예상대로 삼척시장은 생각이 없거나 혹은 삼척 지리를 모르거나, 혹은 치매에 걸렸거나....

                          △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다 없어진다. 그 자리가 원주 유치 예정지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전부.

소방방재산업단지 공사가 중단되고 어마어마한 넓이의 산림을 파헤쳐 놓은 삼척시는 기업유치가 불발되자 이 부지를 포함한 더 넓은 지역을 원전유치예정부지로 선정한 상태다. 그 중간에는 군부대가 있고, 옆에는 친환경 생태마을이 있고, 그 다른 옆에는 해양 레일바이크 관광단지가 있다. 원전을 찬성하는 시민이 96%라고 자랑하는 삼척시는 반대하는 주민은 삼척을 떠나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원전을 유치하고 그 옆에는 생태마을을 만든단다. 방재산업단지 조성으로 이주했던 한 마을은 원전부지에 이주단지까지 포함된 바람에 체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이주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대대책위 주민의 식당은 손님이 끊긴지 오래란다.

                              △ 삼척 소방방재산업단지. 산림을 파헤쳐 좋고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이고, 흉물스럽긔

 

강원도 산골짜기 조그만 마을 동막리에는 더 이상 강혜정처럼 순수한 바보도, 멧돼지가 가장 커다란 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을 이장도, 공동 경작과 공동 소비로 착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민들도 없다. 18개의 구멍을 위해 수십만평 잔디를 깔고 살인적인 농약을 뿌리는 골프장과, 방사능 오염으로 병마의 위험에서 살아야 하는 초췌하고 근심어린 몇몇의 주민만이 있을 뿐일 것이다.

 

두 동막리는 어찌될까. 앞으로 10년뒤, 우리가 찾아갔을 때 마을 주민들이 "동막리에 어서 오세요!!“ 라며 반겨줄 것인지 걱정스럽다.

 

웰컴 투 동막골. 그 순수함을 지키자.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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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 최초 발생한 지 세달이 지나가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200여만두가 살처분되고, 전국적으로 백신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쪽에서는 조류독감이 올라오고 있다.

각 도로마다 방역초소가 생기고 철통 방역을 하고, 백신접종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세는 멈추지 않는다.

살처분 가축의 실질적 보상조차 그 규모에 있어 불투병한 가운데 강원도 곳곳의 민심은 흉흉해졌다.

초기대응이 미진했다는 불만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고, 간간히 외국 축산물 수입의 정당성을 찾기위한 수작이라는 '음모론'도 소리없이 퍼져나간다.

백신접종을 하는 공무원이 전염시킨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순간에 삶의 모든 것을 땅에 뭍어야 하는 농민들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구제역을 비롯한 가축 및 사람 전염병에 대한 사회경제적 해석을 담은 새사연의 보고서는 지금까지 방역 초기대응의 문제 및 각종 구제역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가 근본적인 시스템에 있다는 주장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속의 상품화 된 가축의 기업형 축산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고, 그들의 지배구조를 설명한다.

이 보고서는 위생과 방역을 소홀히한 일부 농민들의 문제, 혹은 초기 발병을 은폐했던 일부 축산농가의 책임으로 구제역 사태의 원인을 귀결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첨부 <구제역과 조류독감, 그리고 인간의 미래>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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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영화 2010. 9. 15. 18:43 |

# 영화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애니매이션은 언제나 그렇듯 소소하다. 3D로 제작되는 수많은 블록버스터 애니매이션의 화려함은 없지만, 그 특유의 부드러운 움직임에서 정겨움이,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하늘거리는 색감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정말 간만에 극장에서 관람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영화를 보는 모든 순간, 그 따스하고 정겨운 화면으로 치유를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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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취향 덕분에 블록버스터와 히어로 영화를 주로 보는 나로서는 극장이란 곳은 웅장하다 못해 귀가 멍멍해지는 사운드와 눈이 쫓아가지 못할만큼 빠른 속도의 화면을 뚫어져라 보는 곳이다. 당연히 영화 관람 후 몰려오는 피로감이 크다. 그러나 아리에티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관람하는 90여분의 시간은 나에게 극장이란 곳이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제목 그대로 마루밑에 사는 소인들의 이야기다. 호기심 많은 14세 소녀 아리에티가 쇼우라는 인간 소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소인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은 인간들의 물건에서 조금씩 빌려쓰면서 살아가고,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면 살고 있던 곳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아리에티가 호기심에 인간 소년에게 들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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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 애니매이션은 커다란 갈등도 없고, 갈등을 유발하는 악인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일상적이었던 울타리를 약간 넘어간 아리에티의 행동을 보여준다. 인간 소년인 쇼우는 소인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그들을 잡을 생각도 안한다. 마치 당연히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인 것처럼.

아리에티의 가족은 그들과 같은 종족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른다. 같이 살던 친구 가족들은 인간에게 잡혔거나 그들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갔다. 아리에티가 쇼우를 만난 이후, 그녀의 가족들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준비한다. 빌려쓰는 그들이 지키는 철칙이다. 인간들과 행복하게 사는 해피엔딩은 없다. 헤어짐이 아쉬운 소년소녀의 아릿한 그리움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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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은 바로 소인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각설탕 하나 혹은 휴지 한조각을 빌려쓰면서 살아간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고 조금조금씩 빌리는 거다. 아리에티가 살던 저택의 인간은 소인들을 위한 집까지 만들어 놨다. 언젠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소인들은 그 좋은 집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인간들의 저택에서 멀고 험한 이사를 결정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빌려쓰는 존재인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어겼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아리에티와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방식이 어쩐지 우리과 닮았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빌려쓰는 존재이지 않은가. 자원을 빌려쓰고 물을 빌려쓰고 공기와 땅과 하늘과, 우리들 보다 먼저 존재했던 모든 것들에게서 우리는 빌려쓰고 있는 존재다. 답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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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루에티]에서 나온 소인들의 삶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지금처럼 파괴적인 자연에 대한 수탈의 행위를 멈춰야 된다는 조용하고 힘있는 주장이다. 자연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빌려쓰며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희망찬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하고 확고한 충고다. 심장 수술을 앞둔 쇼우처럼 몇일 뒤 우리가 살고 있는 대 저택의 가장 가까운 우리 편이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경고다. 수채화 처럼 정겹고 따스한 장면에서, 커다란 갈등없는 잔잔한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메세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경고다. 다만, 겁을 주기 위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아리에티의 가족들의 삶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


뭐, 개인적으로 삽질대마왕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MB라고 안했음)

아, 마지막으로, 전 대강 반대합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2010 / 일본)
출연 시다 미라이,카미키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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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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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2010. 9. 3. 17:39 |

한달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마음을 놓고 일을 하지 않은지 한달이 지났다. 휴가도 다녀오고, 술도 거하게 마셨고, 집에도 들렀으며, 생일도 지났다. 아직 굶어 죽을 만큼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냉장고에 썩어가는 음식도 없고, 세탁기는 3일에 한번씩 돌아간다. 일주일에 두번씩은 외출을 하고 주로 여자친구과 영화를 보거나 저녁을 먹는다. 어제는 고용지원센터에서 고맙게도 20여만원의 실업급여까지 나왔다. 취업특강을 한번 들었고, 구직활동을 한번 이상 해야 한다. 할일도 있다. 평안한 일상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일주일동안은 아무것도 못했다.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던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평소 일하던 8시간이 괜히 불안했다. 낮잠을 자도 깊지 못했고, 게임을 해도 한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아무 이유없이 불안했었다. 내가 이런 시간적 호사를 부리는 것이 불편하고 낯설었다. 닭없는 백숙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 불편함 속에 보낸 일주일 뒤,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이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옮겨 갔다. 신기한 것은 그 둘의 사이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다는 것.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18시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미리 결론을 이야기 하면 난 아직 그 시간이 버겁다.

집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집이 그리 크지 않고 짐도 많지 않아서 정리라고 할것도 없다. 컴퓨터를 청소하고, 전선들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는다. 물기없는 극세사 걸레로 여기저기 세심하게 먼지를 제거한다. 티비와 책장의 먼지도 털어내고 책을 다 꺼내서 다시 정리한다. 수납장이 없는 관계로 몇 안되는 내 물건들을 비어있는 책장에 진열한다. 일주일 뒤에 쌓인 먼지를 보면서 괜히 꺼내어 놨다 후회하겠지만 당장은 보기 좋다. 청구서와 우편물을 분리한다. 버릴 것들은 개인정보가 있는 경우 잘게 찢는다. 납부해야 할 청구서를 서랍속에 넣는다. 납부기한을 넘길 수 있기에 평소 자주 여는 서랍 가장 앞부분에 둔다. 침대보와 배겟잇을 벗겨 세탁기에 넣는다. 이불은 창문밖에서 먼지를 털고 잘 개어 놓는다. 햇볕에 말리고 싶지만 내 베란다는 너무 좁다. 매트리스를 들고 침대 침상의 먼지를 닦는다. 아직 새 가구에서 나는 따끔한 냄새가 남아있다. 일회용품을 한곳에 모은다. 명은 뚜껑을 분리하고 플라스틱 병은 조그맣게 만든다. 생수를 사다 먹어서인지 1.9리터짜리 병이 꽤 많다. 참치와 햄 등의 캔들도 물에 씻은 뒤 따로 모은다. 각 재활용 쓰레기를 현관 밖 복도에 내놓는다. 설겆이를 하고 수채구멍의 음식물 쓰레기를 그릇에 모은 뒤, 냉장고 속 먹지 못할 음식도 같이 모은다. 물을 짜서 모은뒤 고민을 한다. 양심은 음식물 수거함으로 향하지만 몸은 화장실에 왔다. 이번 한번만 여기에 버려야지. 거짓다짐으로 맘을 편히 만든다.

쓰레기를 다 정리하고 식탁에 앉아 잠시 쉰다. 담배를 피워야 할 순간이지만 난 이미 담배를 끊은지 100일이 넘었을 때다. 휴.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세탁기를 돌려 놓고 청소기를 돌린다. 극세사 걸레를 깨끗이 빨아 적당히 물기를 짜내고 마대자루에 고정한다. 걸레질까지 끝나면 땀이 제법 나온다. 돌아가는 세탁기의 상태를 보고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서 넣는다.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는 것은 어색하지만 혼자이니 상관없다. 화장실에 들어간다. 문을 닫는다. 그러다 문득 혼자이니 상관없다는 생각에 다시 연다. 욕실용 세제를 여기저기 뿌리고 구석구석 닦는다. 반짝였던 타일에 숨어 있던 때가 나온다. 변기를 닦으려다 멈칫한다. 아직 변기솔을 사기 전이다. 주방으로 가서 고무장갑을 가져 온다. 젖은 손을 억지로 밀어 넣고 변기를 닦는다. 벽과 바닥을 닦은 뒤 샤워기로 행궈내고 바닥 가득한 거품과 수채구멍의 머리카락을 치운다. 요즘들어 탈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친 내 몸을 닦을 차례다. 몸을 닦으며 젠장. 쓰레기를 안버렸다. 아, 갈아입을 옷도 안가져 왔구나. 혼자이니 상관없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옷을 입고 쓰레기를 수거장으로 옮기고 나서 시계를 본다. 이런. 아직 오전이다. 담배를 필 순간이지만 난 이미 담배를 끊었다. 휴.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루 18시간. 그 중 8시간은 지난 1년동안 나에게 없던 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안에 주동적인 내가 없었던 시간이다. 기계적이고, 의무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했던 시간이었다. 난 그 건조한 시간을 갚고 쓰고 모아야 할 돈에 대한 기다림으로 버텼다. 매월 10일. 월급이 들어오는 날 그 건조함을 아주 조금 적셔주는 기쁨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무의미한 건조함에 말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앞뒤 재단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뒀다. 마침 때는 좋았다. 휴가철이고, 회사가 힘들기도 했고, 계약기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의미한 건조함에 말라가며 기계적이고 의무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했던 나에게 돌아온 8시간은 나에게 불편함과 어색함이다. 역시,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그리고 그 시점에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보다는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했다.

첫 단추가 어긋났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이어지고 있다.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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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시픽]이라는 미드를 보리라 맘을 먹은지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대장정에 한발 담그기가 어렵다. 10부작이라는 것이 부담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그 이상의 미드, 즉 시즌을 이어가는 미드는 한번에 볼수 없다),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보다 익숙하고 언젠가 두번 정도는 본 것 같은 비슷한 미드를 에피타이져로 섭렵하는 것.

뭐, 당연한 선택으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더 퍼시픽]이 HBO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후속편으로 제작되었고 구성역시 비슷하다]

2001년 제작되어 HBO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2009년 슈퍼액션을 통해 우리나라에 방영되었고, 물론 그 전부터 전쟁 드라마의 바이블과 같이 추앙받던 명작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101 공수사단 506 공수보병연대 2대대 5중대(Easy 중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1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이 왠만한 전쟁영화보다 커다란 스케일을 보여주며, 자칫 지루해 질수 있는 이야기를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구성으로 엮어내고 있다.


영화를 다시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년 제임스 카메룬)]이다. 아마 과장 조금 보태서 100번은 넘게 봤다. 이유야 일단 재밌고, 더 큰 이유는 당시 삭제되지 않은 버전의 비디오 테잎을 어디선가 구했었다. 다들 아시다 싶이 당시 모든 외화들은 지금처럼 세계 동시개봉 이런거 없이 몇달 혹은 몇년뒤에 겨우 들어와서 그것도 여기저기 가위질을 해버리고 개봉하였었다. 당시 터미네이터도 많은 부분이 가위질 되었는데 가장 많이 상실된 부분이 영화 클라이막스인 T-800과 T-1000의 제철소 전투 장면 이었다. 아마 나는 당시 어린 마음에 그 "가위질"된 장면을 보는 것에 상당한 우월감이 있었을 꺼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서 몇몇의 배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영화 속 배우들의 이력을 그다지 외우지 않는다. 그저 "아! 그 영화에 그 역할로 나왔던 아무개"라고 기억하는 편이다. 특히, 일본영화의 배우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일단 이름이 어렵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1부에 등장하는 소블대위. 전형적인 훈련조교로 FM이지만 실전에선 고문관으로 나온다. 재수없고 오만하며 유치한 캐릭터이지만 그는 [프렌즈]에서 로스 역할로 사랑을 받았던 데이비드 쉬머였다. 소블 대위는 1부 이후 간간히 얼굴만 비추지만 그의 치졸한 연기는 극중 이지중대원들에게 회자됨과 동시에 관객들 역시 그의 존재를 항상 느낀다. 물론, 비호감이다.


소블대위에게 실오라기 하나로 트집잡히는 립턴 상사.
마크 월버그의 형이자 "뉴키즈 온더 블록" 멤버였던 도니 월버그는 이 드라마에서 실질적인 이지중대의 리더로 성장하는 립턴 상사를 연기했다.  선임상사를 거쳐 전시임관 장교로 임관되는 그는 극중 무게감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7부는 립턴 상사의 나래이션과 시선으로 당시 이지중대가 펼쳤던 벌지전투를 그리는데 이 한편에서 마크 월버그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 배우는 드라마 내내 나와도 그 존재감이 뛰어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몇 장면 안나오는 배우들도 있었다. 위의 데이비드 쉬머는 존재감있는 치졸연기 덕분에, 마크 월버그는 매 편마다 중요한 역할을 덕분에 많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작 당시가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제 언급할 배우 두명이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 보니 까메오인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부는 D-DAY 노르망디 강하작전 이후 전사한 이지중대원들을 대신해서 온 보충병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보충병 중 한명. 앳되보이는 제임스 맥어보이. [원티드], [어톤먼트], [페넬로피]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다. 그의 필모그래피엔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나와 있지 않고 인물 소개에만 잠깐 언급된다. 
 

앳되게 등장한 제임스 맥어보이는 채 1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처첨한 최후를 맞는다.

또 한명의 까메오 같은 엑스트라가 본 드라마 1부에 등장하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배우라 나머지 9편에서 그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없었다. 더 슬픈건 제임스 맥어보이보다 짧게 나온다는 것이다. 대사도 몇마디 없으니 그의 천부적인 코믹 연기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사이먼 페그.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하우투루즈프렌드]에서 그의 연기에 반하지 않을 수 있던가?
그러나 본 드라마에서는 윈터스중위에게 소블대위의 편지를 전하는 전령으로 나오고 끝이다. 딱 그 한장면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장면. 컷으로 따지면 차타고 오는 장면 세컷, 차에서 내리는 장면 한컷, 윈터스에게 편지 전해주는 세컷. 대사로는 세마디. 윈터스 중위 두번 부르고 편지왔다고 말하는 게 전부다.  그가 계속 등장할 줄 았았고 또 기대했던 마음은 그저 방학 맞은 초등학교 교실처럼 창백해지고 말았다.

영화는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재미가 있을까.
보지 못한 장면을 찾거나 등장인물의 옥의 티를 찾거나 혹은 까메오로 등장한 유명 배우를 찾거나 특정 영화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주를 찾거나, 그리고 지금 유명한 배우들의 앳되거나 굴욕적인 등장을 찾거나!!

그리고 찾고 난 뒤 나도 모르게 짓는 미소는 영화를 다시 보는 사람만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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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울한 도시 고담시(Gotham City).

범죄의 도시.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위에는 마피아가 있다. 도시가 이지경이 되니 검찰과 경찰은 물론 판사들도 마피아를 떠받들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의의 꽃이라고는 잎도 피지 않을 것 같았던 도시에 밤마다 검은 망토 휘날리며 마피아만 때려잡는 용자가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배트맨이다. 그는 정체는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 언젠가 고담시가 정의로운 도시가 되길 바라는 모범시민이다.


그의 앞에 나타난 신임 지방검사 하비 덴트(Harvey Dent). 브루스는 하비의 정의로움에 반해 그가 자신의 꿈을 완성시켜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비에게 던져준 선물. 그것은 후원모금파티.

“말씀은 고맙지만, 3년간은 재선에 안 나갈 겁니다.”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제 친구들과 후원모금 파티 한번이면 평생 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 파티에서 브루스는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 I believe in Harvey Dent." (전 하비 덴트를 믿습니다.)


 

여기는 이상한 도시 원주.


건강도시, 혁신도시, 첨복도시.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도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덜컥 당선되는 이상한 도시.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무장한 체 배째라며 주민들 농락하고 뒤로는 건설사 발바닥 핥아가며 골프장이나 지어주는 아주아주 이상한 도시 원주. 그런데, 이런 이상한 도시에 언젠지 모르게 나타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매일같이 경찰과 싸우기도 하고, 한겨울 아스팔트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남들 출근시간에 커다란 피켓을 들고 매연 가득한 도로 가운데 망부석처럼 서있기도 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불의에 저항하는 원주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민들에는 항상 주황색 점퍼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노동절 원주 집회에 참석한 자랑스런 우리 민주노동당!!

그리고 그 민주노동당은 2010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6월 2일 지방선거. 시장 후보와 기초의원 후보 2명, 비례후보 1명이 출사표를 던진 민주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총력을 기울여 당선이라는 성과를 보이고자 한다. 썩어가는 지역정치판을 엎어버리고 시민이 주인되는 새로운 지역정치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이번 선거예산으로 사용할 특별당비를 낼 수 있겠냐는 의사확인전화였다. 10만원의 특별당비를 이야기하며 한숨과 사과를 반복한다. 그 한숨과 미안하단 말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별당비를 약속하고(일단 5만원으로 하자 했다), 10만원을 선뜻 내지 못한 내 소심함에 또 한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하비 덴트가 부러워 졌다. 그러나, 하비 덴트에게 평생 돈 걱정 안할 파티를 열어줬던 브루스는 우리당엔 없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주는 정치자금을 덥석 받아먹을 당도 아니다. 물론, 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한 달 1만원도 부담스러운 당원들에게 특별당비 10만원을 권하는 선본원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당연하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6월 2일로 날아가 본다. 민주노동당 선거사무실은 축제분위기다. 시장은 물론 기초의원과 비례의원까지 모두 당선이 되었다. 한나라당의 표밭이라고 했던 강원도에서 당원들의 땀과 눈물로 일궈낸 감격적인 승리다. 모든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몰려오고 여기저기 카메라 플래쉬가 터진다. 당선자 4명은 서로의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며 희망찬 원주를 만들어갈 포부를 밝힌다. 이 모든 성과가 당원들과 원주시민들의 도움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수많은 당원. 그리고 시민들도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믿습니다!”

그리고 원주에서는 진보청치의 꽃이 피기 시작하겠다.


 

그러니, 우리 이런 행복한 날을 위해서, 혹은 전화번호를 눌렀다 끊었다 반복하며 한숨짓는 선거운동본부 상근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당을 알리기 위해 새벽부터 늦밤까지 고군분투하는 후보자들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특별당비를 내는 것이 어떠할지(우리 모두 브루스 웨인이 될 수 있다는 거) 뻔뻔하게 제안해 본다.




이 글은 민주노동당 원주시위원회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지풍산의 영화세상(http://ewmsi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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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아바타]열풍이다. 한국 누적 관객 수가 천만에 육박하고, 전 세계에서 벌어드린 돈이 16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라면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전작 [타이타닉]의 기록은 쉽게 돌파할 것이다. 그러나 흥행과 더불어 논란도 광풍이다.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현 민주당 정권에게 힘을 실어주는 영화라 비판하고, 바티칸에서는 자연숭배를 조장하는 비기독교적 영화라 내뱉었다. [원령공주], [늑대와 춤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카혼타스] 등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는 주장도 퍼지고 있다. 그런데 왜 영화의 흥행은 멈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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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이야기

 

지구의 자원위기로 “판도라”행성의 자원을 캐러 온 인간들은 원주민 “나비”족과 대립한다. 교섭은 실패로 끝나고 군산복합체는 무력으로 수억년 공존했던 “나비”족과 그들의 자연을 침략한다. 그리고 “나비”족은 아바타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제이크”와 함께 인간들과 마지막 결전을 치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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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힘

 

[아바타]는 블록버스터에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를 명쾌하고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홈트리”가 무너질 때 관객은 눈물짓고 “쿼리치”의 최후에서 관객은 환호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수줍은 사랑도 영화 속 큰 재미이다. 그러나 [아바타]의 진정한 힘은 시각적 향연이다. 3D상영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답게 시각적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영화는 162분이라는 길고 긴 상영시간 내내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 힘이 [아바타]의 흥행 돌풍의 주역이다.

 

 

[아바타] 최고의 재미

 

흥미롭게도 [아바타]의 최고의 재미는 영화 속에 있지 않다. 영화 속 수많은 명장면이 무색할 만큼 뻔뻔하고 웃기며 희한한 기사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나비”족 학살이 조지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연상시키며 이것은 곧 미국이 전쟁광, 환경파괴범으로 그려지는 것이고 특히 군산복합체를 악의 근원으로 보게 되고, 이는 민주당에게 꿀 같이 달콤한 영화일 것”이라는 미 보수진영의 비판이다. 아니, 잘 생각해 보자. 그들이 비판한 내용은 사실아닌가.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중동지역 오일패권을 장악한 그들이다. 군산복합체의 떡고물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그들이다.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책임은 아주 조금 지고 있는(그나마도 떠밀려서) 그들이다. 그래, 니들 말이 맞다. [아바타]는 그 사실을 아주 조금 영화에 반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의 배급은 20세기 폭스(미국의 대표적 보수언론 폭스뉴스와 같은 계열사)가 맡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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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진실

 

[스파이더맨3]가 생각난다. 기름으로 더럽혀진 미국(블랙 스파이더맨)에서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미국(원래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오고, 중동(샌드맨)은 스스로 반성하고 미국에게 사과해라 라는 더러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영화다.(http://ewmsis.tistory.com/5)

[아바타]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인간을 악으로 규정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나비”족은 자연과 공존할 뿐 스스로를 지킬 힘을 지니지 못한 존재다. 결국 그들은 “제이크”를 통한 구원을 바라며 갈등 해소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위치만을 고수한다. 이것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보여진 백인 메시아주의의 연장이며, 나아가 ‘원주민’들은 평화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수동적 존재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미 수동적 존재로 규정되어진 “나비”족의 영화 속 승리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영화의 시작은 열면 절대 안되지만 너무나 탐이 나는 “판도라 상자”를 “제이크”를 통해 살짝 열며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미 예견된 침략과 점령의 출발점이다. 모습은 같으나 본질이 다른 존재, “제이크”는 “나비”족의 구원자이며 종말자다. 그리고 이것은 제국주의 침략의 속성과 동일하다.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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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색다르다.

영화 초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지만 뉴욕이나 시카고가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우주선이 불시착했다는 설정만으로도 재밌다. [반지의 제왕]으로 명예와 부를 동시에 얻은 피터 잭슨이 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만발이었다. 어떠한 내용인지, 그리고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체 관람한 [디스트릭트 9]은  영화시작 30여분만에 개인적인 SF영화 순위 상위권에 링크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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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화로운 도시 요하네스버그. 어느날 거대 우주선이 도시 하늘에 나타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궁금해진 사람들은 우주선에 들어가는데 수많은 외계인들이 그 안에 고립된 체 표류하고 있었다. 아마 어떤 이유로 불시착을 한 듯 하다. 사람들은 외계인을 도시 외곽에 수용하고 공존을 결심한다. 그리고 20년이 흐르고, 더 이상 외계인들은 신기한 존재도, 공존의 대상도 아닌 우리와는 "다른"존재일 뿐이다. 수용된 구역은 슬럼화 되고 도시의 암덩어리로 전락한다. MNU산하 외계인 담당부서는 이들은 보다 먼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외계물질에 노출된 주인공은 서서히 외계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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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는...

전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몇가지 특별한 점을 짚어 본다면, 첫째로는 구성방식이 참신하다. 시작부터 인터뷰장면을 편집하여 20여년간의 외계인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끝까지 다큐를 보는 듯한 편집으로 사실성을 부각한다. 당연히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그 구성으로 만들어낸 사실성만큼 높아진다. 비슷한 영화로 [클로버필드 (j.j 애브라함 감독 2006년작품)]를 떠올릴 수 있다. 두번째, 외계인이 등장은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주인공의 변태과정과 외계인들을 박해하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그 중심이다. 즉, 외계인과의 전쟁이나 갈등이 아닌, 외계인을 매개로한 인간들의 모순이 주된 이야기다. 비슷한 영화로 거대 쓰나미를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의 촉매제로 사용한 [해운대(운제균 감독 2009년작품)]가 있다. 세번째, B급정서가 가득 담겨있다. 물론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치고는 시각효과도 뛰어나고 물량공세도 어마어마하다. 상대적인 저예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영화 속 전투장면에서 폭발하는 사람이나 사지가 찢겨나가는 사람 등의 장면은 피터잭슨이 [데드얼라이브 (피터잭스 감독 1991년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취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 (피터잭슨 감독 2001년 작품)]에서 보여준 막힘없는 내러티브 능력도 놓치지 않았으니 그저 흐믓하게 관람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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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중요한 것은 영화 전반적으로 깔린 인간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의 능력에 대한 질투는 그들을 혐오하고 박해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그들의 무기는 우리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능력도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다수다. 그들이 번식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리와 섞이는 것을 차단한다. 놓은 철조망 속의 그들은 제거의 대상이며 골치덩어리이자 우리들이 우주에서 가장 월등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눈에 가시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은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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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는...

시선을 조금만 넓게 본다면, 영화 속 외계인들은 그냥 외계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외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에 수용된 외계인. 그들이 갖힌 디스트릭트9. 영화에서 감독은, 혹은 제작자인 피터잭슨은 다수인 우리들과 다른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어두운 시선을 멀리서 관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비약해 본다면, 우리 주변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디스트릭트9"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먹이를 던져주면서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 볼만하다.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윌리엄 앨런 영, 로버트 홉스, 케네스 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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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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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카신발. 머 같구나 대한민국.



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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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재난영화라 시끄럽던 [해운대 (윤제균감독 2009년작품)]가 벌써 800만 관객돌파라는 성과를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관람을 한 것은 개봉 후 어느정도의 관객평이 인터넷에 올라올 무렵. 정말로 알바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은 극단적으로 갈리더라. 몇편의 리뷰를 보고는 객관적인 판단력을 흐릴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이후 [해운대]에 대한 모든 기사와 리뷰를 끊고 영화를 보는 날까지 개대도, 걱정도 접어두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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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보다 드라마에 집중

그러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감독의 선언이 틀리지 않았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사연과 사랑과 갈등을 그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박중훈의 "메가쓰나미"걱정 장면이 없다면 주말드라마, 혹은 여름특집단막극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쓰나미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제일 뿐, 그 자체가 주된 것은 아니다. 많이 비교되는 [투머로우(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2004년작품)]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기가 다가오는 장면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는 상이하다. [해운대]는 스케일과 스펙터클에서 [투머로우]에게 밀리지만, 그것을 버린 대신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로 꽉 채운다. 그리고 감독이 이러한 선택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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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쉬리(강제규 감독 1999년작품)] 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그 양과 질이 모두 성장하였다. 감히 상상도 못했던 스케일과 CG로 한국영화의 절정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CG의 양으로 승부했던 많은 영화들의 참패로 얼룩지기도 하였다. 최초의 어드벤처 무비를 표방했던 [아유레디(윤상호 감독 2002년작품)]의 대참패와 본격 SF영화 [내츄럴 시티(민병철 감독 2003년 작품)]의 실패.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 감독 2002년 작품)], [예스터데이(정윤수 감독 2002년작품)], [2009 로스트메모리즈(이시명 감독 2002년 작품)] 등의 스타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던 블록버스터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왔다는 걱정마저 나돌게 되었다. 보다 새롭고 참신한 시각적 효과는 이미 헐리웃의 영화들로 인해 관객의 눈이 높아진 것도 있겠지만, 보다 정확한 참패의 이유는 이야기의 부족이었다. 즉, 영화의 내러티브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산만하게 배치된 CG가 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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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르영화는 뜨지 못하는가.

기존의 공식, 관습, 도상적인 틀에서 그 이야기만 조금씩 바꾸는 헐리웃의 장르영화는 꾸준히 재생산된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본 듯한 장면들로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신나게 영화들을 포식한다. 그러나 유독, 헐리웃의 장르적 특성을 되새김질한 한국영화들은 커다란 흥행을 하지 못한다. 특히 제작비용과 시간투자가 비대한 블록버스터의 경우는 열에 아홉은 그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싸이렌, 단적비연수, 화산고, 천사몽, 퇴마록, 튜브, 원더풀데이즈, 청풍명월, 역도산, 청연, 황진이, 태풍, 형사, 중천.
연도별로 다르지만 상대적으로 제작비 대비 흥행실패작 들이다. 혹자는 제목조차 모를 수도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당시(제작년도)에 평균 제작비의 두배 이상의 돈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비주얼의 완성도보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것이다.

한국에서 먹히는 영화  소재.

뭐, 대부분의 관객이라면 동의하겠지만, 성공한(흥행기준) 영화의 대부분의 소재는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하거나 둘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소재를 사용한 영화들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한반도] 등의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그 흥행을 절반이상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어쨌든 간에 역사소재의 영화는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어낸다. 더욱이, 먼 역사보다 가까운 역사일수록 그 효과는 커지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먼 역사를 다루면서 현재 한반도의 국제적 정세를 살며시 끼워 넣고 애국심까지 고취시키는 영화들도 등장하고 있다. [신기전], [황산벌] 등이 그런 맥락의 영화이다. 두번째인 소소한 일상의 소재는 [괴물]로 대표된다. 물론, 영화의 해석에 차이에 따라 [괴물]이 반미영화일수도 있고,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라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관객에게 어필했던 것은 바로 우리 이웃과 같은 서민들이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설정이었다. 또한, 한국 최초의 괴수영화, 더욱이 헐리웃의 장르적 특성을 모두 뒤틀어 버리면서 우리들만의 독특한 감성을 담아낸 것 역시 영화 성공의 주요한 이유였다. (물론 당시 1천만 관객 돌파는 거대 자본의 제작, 배급, 상영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 것도 있지만, 이것이 이후 이야기하자) 더 가까이에는 [추격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추격자]는 유영철과 강호순으로 연쇄살인 이라는 화두와 맞물려 흥행물살을 탔던 영화이다. 19세 미만의 폭력적 장면이 난무하는 스릴러였던 [추격자]는 소소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누구도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포에 공감하는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어필됐다. [우생순]은 아줌마 국가대표들의 삶의 고닮픔을 그리면서 애국심까지 고취했던 탁월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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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로 돌아가자

[해운대]는 위에서 이야기 한 조건 중 두번째 조건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네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가 영화의 70% 이상 차지하고 인물들간의 갈등의 해소를 위한 장치로 쓰나미를 사용한다. 다가올 것이 예상되는 비극을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비극의 존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영화 인물들의 사랑과 다툼, 갈등과 화해에 집중한다. 어쩌면 몇몇의 등장인물들이 쓰나미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쓰나미로 인한 공포나 인물의 죽음이 가슴아파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1시간 30여분의 인생과 사연에 안타까움으로 흘리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혹자는 우연이 너무 많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연결시키기 위한 작위적 설정이 많다라고 불평을 터뜨리지만, 잘생각해 보라! 우리들의 삶은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징그럽게 얽혀있지 않은가. 그 복잡다단한 삶을 두시간에 이만큼 집약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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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재난영화의 시작

별다를 것은 없다. 굳이 "한국형" 이라 말하는 것도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헐리웃 거대자본의 대작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정서가 담겨있기에 "한국형" 이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해운대]에서 보여준 것은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라는 소극적 자부심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다"라는 적극적 자존심이 더 어울린다.. 그렇기에, [해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같이 웃고, 울면서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해운대
감독 윤제균 (2009 / 한국)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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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

태어나서 별로 싸운 적이 없는 나는, 굉장히 쑥스럽게도 겁이 많다. 겁이 많아서 시비가 걸려도 스스로 몸을 사리는 편이다. 물론, 철없던 중고딩시절에 저글같이 같이 몰려다니며 몇 번의 폭력과 싸움을 도도하게 관망했던 적이야 많다.(참여하지는 않는다. 난 겁이 많으니) 이 경험은 아직 철없었던 20대 초반, 나의 활약상이자 마초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수많이 변용되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중고딩시절 경험했던 폭력은 역시 딱 중고딩 그 정도의 수준에서 끝나는 촌극이었을 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청소년의 강력범죄의 정도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누구를 싫어서, 혹은 입을 막기 위해서, 돈을 뺏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해 본적은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글을 쓰지도 못하고, 어느 으슥한 골목길을 누비거나, 큰 학교에 들어가 매일 30분씩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을 게다. 
 
나는야 진정한 평화주의자 비폭력을 지향하는 사람. 10년전 이렇듯 선하게 생겼으니...


진정한 평화 비폭력을 지향하는 지풍산, 폭력을 말하다

사진을 보고 느낀 분노와 짜증은 일단 진정해 주시길 바라며, 본격적으로 영화이야기를 해보자. 오늘 주되게 바라볼 영화는 [파이트 클럽(1999년 데이비드 핀처 작품)]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년 코엔형제 작품)], [똥파리(2009년 양익준 작품] 이다. 이 세편의 영화의 공통점은 딱 하나. 바로 폭력이다. 각 영화는 폭력을 중요한 영화적 기제로 사용한다. 한편씩 살펴보자. 참, 일단 이 글을 읽기전에 위에 언급한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살며시 창을 닫기를 권장한다. 스포일러가 많은 글이다.

현실의 압박을 벗어나는 수단의 폭력


[파이트 클럽]은 1999년 세기말적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삶의 즐거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잭은 어느날 비행기에서 타일러 더든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아주 우연하게 그날 밤 자신의 아파트가 화재로 사라지고 더욱 우연하게 타일러 더든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없는 모든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타일러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무 이유없이 자신을 힘껏 때려보라는 타일러. 잭은 폭력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들의 이유없는 싸움은 곧 미국 전역에 "파이트클럽"이 조직된다. 매주 하루씩 지하실에 모여 서로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그들은 광기어린 타일러 더든의 테러계획을 동조하며 군대를 조직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구속하는 모든 시스템의 원흉인 금융회사의 건물을 폭파한다.

            피흘리며 얻는 쾌감. 그것은 폭력을 미화하기 위한 변명이다.

삶의 탈출구, 그것은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

[파이트클럽]에서 폭력을 나누는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람쥐 쳇바퀴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든 남성들이다. 그들은 온몸에 부숴저라 싸우고 승부에 상관없이 그 폭력의 카타르시스에 빠져든다. 구속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폭력으로 외친다. 그리고 그 광기어린 폭력은 개인간의 소통을 넘어서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로 치환된다. 그리고 미국사회를 구속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모든 은행 및 금융회사를 폭발시키며 밀레니엄을 맞이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이유없는 폭력과 테러는 타일러 더든의 깨알같은 언변에 의한 눈속임을 뿐, 진정한 저항과 투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잡는 손짓이며, 의미없는 폭력의 악순환일 뿐이다. 그것은 타일러 더든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과,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잭의 망상일 뿐이라는 결론이 영화 속 폭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잭이 타일러요, 타일러가 잭이다. 타일러는 잭이 만든 망상에 불과하다.

구속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 그러나 잭은 그러지 못했다.

잭은 자동차 사고 조사원이다. 미 전역 자사의 차가 사고가 난 곳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한다. 시차에 시달리고 불면증이 있으며, 사람과의 개인적 만남은 전무하다. 가구구입중독증이 있으며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한다. 구속하는 모든 것은 그에게 스트레스이며 불면증의 원인이다. 홀연히 나타난 타일러 더든은 잭의 분신이며 또다른 자아였다. 그러나 스스로 억제하고 있던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나타난 타일러라는 망령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수위의 폭력으로 진화한다. 결국, 자신이 타일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잭은,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몽롱했던 가수면상태에서 벗어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마지막 그의 말은 구속하고 있던 모든 것에 저항하려 하지 않았던 그의 비겁함을 깨버린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비록 비겁한 폭력의 사도였던 타일러의 테러 계획이었지만, 타일러를 제거하고 맞이하는 밀레니엄의 테러는 결과론적으로 비겁한 폭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기 또 다른 남자는 삶의 수단이 폭력이고 살인이다. 그의 살인에는 이유가 없으며, 그저 그래야 하기 때문에 살인을 한다. [노인을 위한 영화는 없다]는 돈가방에 얽힌 영화지만, 적절한 주인공도, 적절한 이유도, 적절한 합리성도 찾기 힘들다. 단지 살인으로 말하는 한 인물에 대한 건조한 관조일 뿐이다.

   바로 이 사람이 그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캐스팅 정말 잘했다.

돈에 얽힌 남자들. 그리고 드러나는 폭력성

한 남자(르롤린)가 사막을 지나다 돈가방을 획득한다. 그리고 도망간다. 탈옥한 연쇄살인범(안톤, 위 사진)은 조직의 청탁으로 그 돈가방을 찾기 위해 남자를 쫓는다. 그리고 그 두명을 쫓는 늙은 보안관(에드). 이 세명에 대한 이야기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줄거리다. 안톤은 르롤린을 찾기위해 쫓아가지만, 어느 순간 그 목적을 상실한다. 돈가방은 중요치 않다. 단지 도망가는 르롤린을 잡아 죽이는 것이 주된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를 잡아 죽이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는 알지도, 알 필요도 없다. 안톤은 르롤린을 잡지 못한다. 도망가던 르롤린은 안톤을 고용했던 조직의 상대 조직에게 살해당한다. 그 이후 안톤은 자신을 고용한 조직의 보스를 죽이고, 그 보스의 수하를 죽이고, 심지어는 르롤린의 아내에게까지 찾아가 그녀를 죽인다. 그리고 담담하게 그것이 숙명이라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르롤린의 아내는 무슨 죄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안관

르롤린과 안톤의 흔적을 찾는 보안관 에드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노인이다. 그는 안톤도, 르롤린도 잡지 못한다. 그들의 흔적만 쫓는다. 그리고 안톤의 살인을 보며 그를 이해해 보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유도 없지만, 설사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폭력과 살인이 만연한 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에드는 더 이상 자신이 존재할 곳이 없다는 결론을 짓는다. 이것은 세대와 세대의 단절이며 시대 법과 질서의 혼란이며 폭력에 대처하는 공권력의 모습자체에 대한 회한이다. 그리고 폭력과 살인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 바로 돈이 세상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된 이시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다.

마지막 안톤의 행동. 그것은 극적인 반전 혹은 당연함

에드는 돈을 가지고 도망가 결국 가족까지 위험에 빠뜨린 르롤린에 대해 비판적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안톤의 이유없는 살인에 대해 인간적 회의에 빠린다. 결국 아름다운 노년생활의 시작을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시작한다. 안톤은 이유없는 살인, 그리고 상실된 목적을 위해 르롤린의 아내에게 찾아간다. 그녀를 죽이고 나오던 안톤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팔뼈가 피부밖으로 튀어나오는 심한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두 소년. 괜찮냐 묻는 그 소년들은 아무에게도 자신을 봤다고 이야기 하지 말라며 건낸 100달러 한장에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고 서로 나눠가지기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결국 영화는 물질만능주의의 미국 자체를 비판한다. 그리고 이유없는 살인마 안톤 역시 돈의 노예임을 밝힌다. 사이코 패스 살인만의 마지막 인간적 협상은 영화가 끝나도 관객을 찝찝하게 만드는 반전이다.

여기서 잠시,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이시대 변질된 일부 386세대에 대한 일침을 가한 장면을 소개한다. 영화는 [괴물 2006년 봉준호 작품)]이다. 경찰에 쫓기던 박남일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이를 발견한 노숙자가 그를 자신의 허름한 처소에 눕혀 간호한다. 아침에 일어난 박남일. 노숙자의 빈 소주병과 배낭을 챙기며 "내가 돈은 준다" 라며 지갑을 건내자 노숙자는 빈 병으로 박남일의 머리를 가격하고 "이 새끼가 돈이면 다 되는줄 알아.."라며 일침을 가한다.

  아프겠다.

폭력으로 파괴된 가족의 이야기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그렇다. 이 영화는 가족영화다. 그리고 양익준의 영화다. 감독이 연기하는 상훈은 어느 뒷골목에서 갖 튀어나온 건달이다. 어색함이 없어 그의 전직이 궁금하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 영화. 폭력과 욕설로 치장하고 있는 [똥파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지만 감춰진 가정폭력에 대한 경고이다.

      상훈은 따뜻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상훈과 연희는 둘 다 가정폭력의 희생자다. 상훈은 그 폭력을 이기지 못해 건달이 되었고, 연희는 그 폭력을 견디며 힘들게 살아간다. 누구보다도 가족의 정이 그리운 상훈은 그럴수록 더 폭력적이 되고, 더 거칠어 진다. 그의 폭력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이며 그 핏줄이 더럽게 아픈 것을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미움이다. 영화는 상훈에게 세상과, 그리고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은 변화의 시작은 가족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의 빛과 따뜻한 한조각 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연희 동생 영재(오른쪽) 그는 영재이지만, 상훈의 어린 시절과 동일하다.

되물림 되는 폭력. 상처받은 가족.

[똥파리]가 단순히 가족의 중요함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정폭력의 되물림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가 더 크다. 상훈은 15년만에 출소한 아버지와 배다른 누나, 그리고 조카와 연희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건달을 그만두기로 결정하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러나 연희의 동생인 한영재는 다시 시작되는 폭력의 악순환의 시작이다. 월남 찬전용사지만 아내가 죽고 정신줄을 약간 놓은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영재는 상훈이 일하는 용역회사로 들어온다. 그리고 착한 심성을 감추고 폭력에 익숙해져 간다. 상훈의 뒤를 이을 것은 자명하다.



위 세편의 영화는 폭력을 각기 다른 수단으로 사용한다. [파이트 클럽]은 폭력으로 삶을 탈출하고자 하는 정신분열적 인간들을 보여주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돈을 둘러싼 폭력으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이코패스를 통해 인간성이 상실된 건조한 미국을 그린다. [똥파리]는 끊이지 않는 가정폭력의 악순환과 그 폭력의 슬픔을 밀도있게 그려나간다. 그러나 이 모든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사회의 구조를 부숴버리기 위한 타일러 더든의 테러는 허상이며 망상이었고,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안톤은 결국 돈이라는 굴레 속에 목적을 상실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된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상훈은 그 가족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죽음과 동시에 영재라는 새로운 상훈이 비극적으로 탄생한다. 결국 모든 폭력은 그 이유가 그럴듯하게 포장된다 하더라도 그 근원은 비겁하다. 다람쥐 쳇바퀴 속의 잭의 비겁함으로 나타난 타일러 더든, 가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돈가방을 가지고 도망가다 죽어버린 르롤린과 그를 못죽이자 그의 아내라도 죽여야 한다는 안톤. 아버지의 폭력으로 여동생을 잃은 상훈의 뒤틀린 폭력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러한 폭력은 단절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또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시작되는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은, 그러한 폭력이 다시 살아났다.



2009년 우리는 영화 속 극단적 폭력보다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더 섬뜩한 것은 그 폭력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폭력의 끝은 비극이다.

2009년. 나는 그 분의 비극을 꿈꾼다.


파이트 클럽
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9 / 독일, 미국)
출연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미트 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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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2007 / 미국)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켈리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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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감독 양익준 (2008 / 한국)
출연 양익준, 김꽃비, 이환, 정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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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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