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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31 [아포칼립토] 궁색하기만한 자기 합리화

아포칼립토
감독 멜 깁슨 (2006 / 미국)
출연 루디 영블러드, 달리아 헤르난데즈, 조난단 브리워, 라울 트루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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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명은 외부의 침입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에 내부로부터 먼저 붕괴된다" - 윌 듀런트


 영화 시작부터 문제다


우리가 다소 생소한 이야기인 마야문명을 매우 적나라하고 파격적으로, 그리고 긴장감있게 그린 [아포칼립토]는 그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 영화 제작사의 로고가 지나가기 무섭게 논란의 여지를 보여준다. 윌 듀런트의 인용문을 넣지 않았다면 영화는 단순한 액션영화로서의 완성도와 흥행성, 그리고 당시의 문화를 뛰어나게 묘사했다는 부분에서 호평
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윌 듀런트의 일용문 한줄로 이 영화를 선택할수도 있다.
 


문명을 판단하는 왜곡된 기준. 그것은 일반화된 서구의 시선.


각 민족, 혹은 국가, 혹은 문명마다 각자 특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또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명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영화 "로빈슨크루소"의 첫장면이 생각이 난다. 무인도에 떨어진 친종교적인 로빈슨은 해변에서 원주민들이 사람을 먹는 장면을 보고 "죄악"이라 생각해 원주민을 죽이다. 그 중 한명의 원주민을 살린 뒤 자신의 노예로 사용한다. 그때 원주민은 "친구가 죽으면 그 시신을 먹어야 친구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간다"라는 특수한 문화를 이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혹은 인간적 관점에서 "식인"의 행위는 말할 필요 없이 죄이지만, 문화적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 원주민들의 관습일 뿐이다. 이것을 나쁘게 보고 그들을 "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화의 상대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들의 기준을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이었을 시절,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영향을 꽤 커다란 것이다. 우리는 미국(혹은 서구)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인식하며 살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상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구적인 기준으로 변해왔다. [록키]는 소련 사회주의자를 쳐부수는 정의의 사도였고, "백인만 도와주는" 슈퍼맨은 우리의 영웅이었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유적을 훼손하는 도굴꾼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에 열광했다. [아포칼립토]는 그러한 시선을 가진 자들이 만든 기만적인 영화다. "신대륙발견"이라는 건방진 생각의 왜곡된 역사를 아직도 부르짖는 그들은 영화속의 마야문명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동물"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영화 도입부에 인용문을 삽입,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겁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이런 파렴치한 행위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높은 영화적 완성도, 짜증나는 그들의 논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완성도과 굉장히 높다. 사실적인 고증과 묘사로 그 어떤 영화보다 집중하기 쉽다. 또한 영화 중후반부터의 추격씬은 아마 몇년간 영화인들에게 회자될만한 명장면일 것이다. 언어도 영어가 아닌 마야의 언어(확실하진 않다)를 사용한 것도 과감한 시도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보다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영화가 그 사회 혹은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뻔뻔한 궤변을 당연하다는 듯이 외친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들의 논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화된다. [unite 93]에서의 패트리어티즘, 뻔뻔하게 돌아오고 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록키 발보아] [슈퍼맨리턴즈] [인디아나존스4] [다이하드4]. 우리는 이러한 팍스아메리카나를 외치며 돌아오는 복고 영화들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문화적 영역에서의 그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그리고 뻔히 보이는 미패권주의(혹은 미우월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알고는 있나....진정한 야만은 너희들이라는 것을...


 이런 뻔뻔하고 창피한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간다면, 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멀쩡한 원주민이 있는 대륙을 "신대륙"이라 자처하며 문명을 파괴하고, 인디언을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학살하고, 각 국가의 전쟁을 조장하며 무기를 팔아 부를 축척하고, 노근리에서 우리민족을 학살하고, 베트남, 파나마,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등등등등 에서 학살을 자행한 너희들이야 말로 진정한 "야만"이다. 


※ 이 글은 2007년 2월 9일 본인의 미니홈피에 포스팅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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