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우울한 도시 고담시(Gotham City).

범죄의 도시.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위에는 마피아가 있다. 도시가 이지경이 되니 검찰과 경찰은 물론 판사들도 마피아를 떠받들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의의 꽃이라고는 잎도 피지 않을 것 같았던 도시에 밤마다 검은 망토 휘날리며 마피아만 때려잡는 용자가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배트맨이다. 그는 정체는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 언젠가 고담시가 정의로운 도시가 되길 바라는 모범시민이다.


그의 앞에 나타난 신임 지방검사 하비 덴트(Harvey Dent). 브루스는 하비의 정의로움에 반해 그가 자신의 꿈을 완성시켜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비에게 던져준 선물. 그것은 후원모금파티.

“말씀은 고맙지만, 3년간은 재선에 안 나갈 겁니다.”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제 친구들과 후원모금 파티 한번이면 평생 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 파티에서 브루스는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 I believe in Harvey Dent." (전 하비 덴트를 믿습니다.)


 

여기는 이상한 도시 원주.


건강도시, 혁신도시, 첨복도시.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도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덜컥 당선되는 이상한 도시.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무장한 체 배째라며 주민들 농락하고 뒤로는 건설사 발바닥 핥아가며 골프장이나 지어주는 아주아주 이상한 도시 원주. 그런데, 이런 이상한 도시에 언젠지 모르게 나타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매일같이 경찰과 싸우기도 하고, 한겨울 아스팔트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남들 출근시간에 커다란 피켓을 들고 매연 가득한 도로 가운데 망부석처럼 서있기도 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불의에 저항하는 원주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민들에는 항상 주황색 점퍼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노동절 원주 집회에 참석한 자랑스런 우리 민주노동당!!

그리고 그 민주노동당은 2010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6월 2일 지방선거. 시장 후보와 기초의원 후보 2명, 비례후보 1명이 출사표를 던진 민주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총력을 기울여 당선이라는 성과를 보이고자 한다. 썩어가는 지역정치판을 엎어버리고 시민이 주인되는 새로운 지역정치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이번 선거예산으로 사용할 특별당비를 낼 수 있겠냐는 의사확인전화였다. 10만원의 특별당비를 이야기하며 한숨과 사과를 반복한다. 그 한숨과 미안하단 말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별당비를 약속하고(일단 5만원으로 하자 했다), 10만원을 선뜻 내지 못한 내 소심함에 또 한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하비 덴트가 부러워 졌다. 그러나, 하비 덴트에게 평생 돈 걱정 안할 파티를 열어줬던 브루스는 우리당엔 없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주는 정치자금을 덥석 받아먹을 당도 아니다. 물론, 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한 달 1만원도 부담스러운 당원들에게 특별당비 10만원을 권하는 선본원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당연하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6월 2일로 날아가 본다. 민주노동당 선거사무실은 축제분위기다. 시장은 물론 기초의원과 비례의원까지 모두 당선이 되었다. 한나라당의 표밭이라고 했던 강원도에서 당원들의 땀과 눈물로 일궈낸 감격적인 승리다. 모든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몰려오고 여기저기 카메라 플래쉬가 터진다. 당선자 4명은 서로의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며 희망찬 원주를 만들어갈 포부를 밝힌다. 이 모든 성과가 당원들과 원주시민들의 도움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수많은 당원. 그리고 시민들도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믿습니다!”

그리고 원주에서는 진보청치의 꽃이 피기 시작하겠다.


 

그러니, 우리 이런 행복한 날을 위해서, 혹은 전화번호를 눌렀다 끊었다 반복하며 한숨짓는 선거운동본부 상근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당을 알리기 위해 새벽부터 늦밤까지 고군분투하는 후보자들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특별당비를 내는 것이 어떠할지(우리 모두 브루스 웨인이 될 수 있다는 거) 뻔뻔하게 제안해 본다.




이 글은 민주노동당 원주시위원회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지풍산의 영화세상(http://ewmsi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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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아바타]열풍이다. 한국 누적 관객 수가 천만에 육박하고, 전 세계에서 벌어드린 돈이 16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라면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전작 [타이타닉]의 기록은 쉽게 돌파할 것이다. 그러나 흥행과 더불어 논란도 광풍이다.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현 민주당 정권에게 힘을 실어주는 영화라 비판하고, 바티칸에서는 자연숭배를 조장하는 비기독교적 영화라 내뱉었다. [원령공주], [늑대와 춤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카혼타스] 등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는 주장도 퍼지고 있다. 그런데 왜 영화의 흥행은 멈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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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이야기

 

지구의 자원위기로 “판도라”행성의 자원을 캐러 온 인간들은 원주민 “나비”족과 대립한다. 교섭은 실패로 끝나고 군산복합체는 무력으로 수억년 공존했던 “나비”족과 그들의 자연을 침략한다. 그리고 “나비”족은 아바타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제이크”와 함께 인간들과 마지막 결전을 치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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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힘

 

[아바타]는 블록버스터에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를 명쾌하고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홈트리”가 무너질 때 관객은 눈물짓고 “쿼리치”의 최후에서 관객은 환호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수줍은 사랑도 영화 속 큰 재미이다. 그러나 [아바타]의 진정한 힘은 시각적 향연이다. 3D상영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답게 시각적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영화는 162분이라는 길고 긴 상영시간 내내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 힘이 [아바타]의 흥행 돌풍의 주역이다.

 

 

[아바타] 최고의 재미

 

흥미롭게도 [아바타]의 최고의 재미는 영화 속에 있지 않다. 영화 속 수많은 명장면이 무색할 만큼 뻔뻔하고 웃기며 희한한 기사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나비”족 학살이 조지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연상시키며 이것은 곧 미국이 전쟁광, 환경파괴범으로 그려지는 것이고 특히 군산복합체를 악의 근원으로 보게 되고, 이는 민주당에게 꿀 같이 달콤한 영화일 것”이라는 미 보수진영의 비판이다. 아니, 잘 생각해 보자. 그들이 비판한 내용은 사실아닌가.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중동지역 오일패권을 장악한 그들이다. 군산복합체의 떡고물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그들이다.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책임은 아주 조금 지고 있는(그나마도 떠밀려서) 그들이다. 그래, 니들 말이 맞다. [아바타]는 그 사실을 아주 조금 영화에 반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의 배급은 20세기 폭스(미국의 대표적 보수언론 폭스뉴스와 같은 계열사)가 맡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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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진실

 

[스파이더맨3]가 생각난다. 기름으로 더럽혀진 미국(블랙 스파이더맨)에서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미국(원래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오고, 중동(샌드맨)은 스스로 반성하고 미국에게 사과해라 라는 더러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영화다.(http://ewmsis.tistory.com/5)

[아바타]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인간을 악으로 규정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나비”족은 자연과 공존할 뿐 스스로를 지킬 힘을 지니지 못한 존재다. 결국 그들은 “제이크”를 통한 구원을 바라며 갈등 해소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위치만을 고수한다. 이것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보여진 백인 메시아주의의 연장이며, 나아가 ‘원주민’들은 평화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수동적 존재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미 수동적 존재로 규정되어진 “나비”족의 영화 속 승리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영화의 시작은 열면 절대 안되지만 너무나 탐이 나는 “판도라 상자”를 “제이크”를 통해 살짝 열며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미 예견된 침략과 점령의 출발점이다. 모습은 같으나 본질이 다른 존재, “제이크”는 “나비”족의 구원자이며 종말자다. 그리고 이것은 제국주의 침략의 속성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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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색다르다.

영화 초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지만 뉴욕이나 시카고가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우주선이 불시착했다는 설정만으로도 재밌다. [반지의 제왕]으로 명예와 부를 동시에 얻은 피터 잭슨이 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만발이었다. 어떠한 내용인지, 그리고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체 관람한 [디스트릭트 9]은  영화시작 30여분만에 개인적인 SF영화 순위 상위권에 링크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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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화로운 도시 요하네스버그. 어느날 거대 우주선이 도시 하늘에 나타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궁금해진 사람들은 우주선에 들어가는데 수많은 외계인들이 그 안에 고립된 체 표류하고 있었다. 아마 어떤 이유로 불시착을 한 듯 하다. 사람들은 외계인을 도시 외곽에 수용하고 공존을 결심한다. 그리고 20년이 흐르고, 더 이상 외계인들은 신기한 존재도, 공존의 대상도 아닌 우리와는 "다른"존재일 뿐이다. 수용된 구역은 슬럼화 되고 도시의 암덩어리로 전락한다. MNU산하 외계인 담당부서는 이들은 보다 먼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외계물질에 노출된 주인공은 서서히 외계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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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는...

전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몇가지 특별한 점을 짚어 본다면, 첫째로는 구성방식이 참신하다. 시작부터 인터뷰장면을 편집하여 20여년간의 외계인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끝까지 다큐를 보는 듯한 편집으로 사실성을 부각한다. 당연히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그 구성으로 만들어낸 사실성만큼 높아진다. 비슷한 영화로 [클로버필드 (j.j 애브라함 감독 2006년작품)]를 떠올릴 수 있다. 두번째, 외계인이 등장은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주인공의 변태과정과 외계인들을 박해하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그 중심이다. 즉, 외계인과의 전쟁이나 갈등이 아닌, 외계인을 매개로한 인간들의 모순이 주된 이야기다. 비슷한 영화로 거대 쓰나미를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의 촉매제로 사용한 [해운대(운제균 감독 2009년작품)]가 있다. 세번째, B급정서가 가득 담겨있다. 물론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치고는 시각효과도 뛰어나고 물량공세도 어마어마하다. 상대적인 저예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영화 속 전투장면에서 폭발하는 사람이나 사지가 찢겨나가는 사람 등의 장면은 피터잭슨이 [데드얼라이브 (피터잭스 감독 1991년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취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 (피터잭슨 감독 2001년 작품)]에서 보여준 막힘없는 내러티브 능력도 놓치지 않았으니 그저 흐믓하게 관람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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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중요한 것은 영화 전반적으로 깔린 인간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의 능력에 대한 질투는 그들을 혐오하고 박해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그들의 무기는 우리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능력도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다수다. 그들이 번식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리와 섞이는 것을 차단한다. 놓은 철조망 속의 그들은 제거의 대상이며 골치덩어리이자 우리들이 우주에서 가장 월등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눈에 가시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은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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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는...

시선을 조금만 넓게 본다면, 영화 속 외계인들은 그냥 외계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외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에 수용된 외계인. 그들이 갖힌 디스트릭트9. 영화에서 감독은, 혹은 제작자인 피터잭슨은 다수인 우리들과 다른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어두운 시선을 멀리서 관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비약해 본다면, 우리 주변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디스트릭트9"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먹이를 던져주면서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 볼만하다.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윌리엄 앨런 영, 로버트 홉스, 케네스 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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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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