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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3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나는 누구일까
조금은 생뚱맞을지도 모르는 시작이지만 우선 내가 어떤 과정으로 영화를 접하는지 이야기 하고 싶다. 일단 내 소개를 하자면 연세대학교 원주배움터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조금은 나이가 많다는 소리를 듣는 복학생이다. 특별히 영화를 좋아하면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던 중고등학교 시절 주말에 시내 극장을 찾아다니는 것이 내 취미였고, 유일한 소비였다. 친구가 많지 않아 혼자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친구들보다는 많은 영화를 섭렵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가난한 자취생이기 때문에 학창시절처럼 극장을 자주 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전 아이스크림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IT강국 아니던가. 극장을 가지 못하는 울분을 웹하드 서비스의 코인충전에 풀어내면서 그동안 보아오지 못했던, 그리고 아쉽게 놓쳤던, 또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던 많은 영화들을 폭식할 수 있었다. 장르와 감독과 주연을 가리지 않고 폭식하는 습관은 영화를 본 것인지 혹은 보지 않은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영화에 대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정도 지난 것 같다. 

영화를 쓴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난 영화가 전공도 아니요, 따로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을뿐더러, 영화비평이라는 범주안에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글발이 좋지 않다. 그저 영화를 본 후 내 생각과 느낌을 주절거리는 단순한 잡문에 불과하다. 컴퓨터는 싸이와 영화와 메신저밖에 모르던 내가, 이러한 나의 잡문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내 얼굴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
두서없는 시작은 각설하고, 지난주 폭식했던 영화들 중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세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러브레터(이와이 순지감독, 1995년작), 무지개 여신(쿠마자와 나오토 감독, 2006년작), 그리고 이프온리(길 정거 감독, 2004년작).

 

죽음에 대한 영화
이 세편의 영화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러브레터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한 여자가 죽은 연인을 잊어가는 과정을 그렸고, 무지개 여신은 사랑인줄 몰랐던 사람의 죽음 후 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프온리는 연인이 죽을 것을 알게 된 남자의 희생을 다룬 영화다. 개인적으로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던 나에게 한줄기 눈물의 축복을 안겨준 영화들이기에 참 고맙다.

영화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츠키(男)  훈남이다.


죽음은 곧 상실, 그리고 그리움과 슬픔
영화에서 주되게 바라보았던 것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소중함이다. 후지이 이츠키(女)는 동명 동급생이었던 후지이 이츠키(男)의 사랑을 그가 죽고 나서 깨닫게 된다.(러브레터) 오누이처럼 붙어다녔던 토모야와 아오이는 아오이의 죽음으로 그 사랑을 알게 된다.(무지개 여신) 사랑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이안은 사만다의 죽음을 예견한 후 진정한 사랑을 배우고 그녀 대신 죽음을 선택한다.(이프온리) 그리고 그 죽어간 이들의 진심은 남겨진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존재로 남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가슴이 동하고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고이지 않는가. 

왜 죽는지 궁금하지 않다. 얼만큼 화려하게 파괴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딱 미국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가치없는 죽음, 그것은 관객의 선택적 판단
그러나 가치없는 죽음도 있다. 물론 영화속이다. 주로 헐리웃에서 만들어내는 블록버스터, 혹은 갱스터 영화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혹은 악당)의 총에 뿜어져 나오는 많은 탄환에 머리가 터지며 죽어가는 그들은 그저 죽는 역할의 배우일 뿐이다. 아무런 가치 없는 죽음. 우리는 그러한 장면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가? 가령 트랜스포머에서 디셉티콘이 멋지게 변신을 하고 주변의 군인을 학살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하는가. 왜 죽었는지 보다 어떻게 죽이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영화 무지개 여신의 아오이와 토모야. 이렇게 이쁜 우에노 주리를 몰라보다니...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
위의 세 편의 영화에서의 죽음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다들 알겠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후지이 이츠키(男)의 죽음은 그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다. 아오이의 죽음으로 토모야는 그녀의 사랑을 모른척 했던 죄책감과 미안함에 대성통곡을 한다. 사만다가 죽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까지 알고 있던 이안은 스스로 그 시간, 장소에서 그 방법 속으로 들어가 사만다 대신 죽음을 택한다. 죽음이 가치 있게 되는 순간, 그것은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故 김주익 열사. 돌아가신 후 내 삶은 달라졌다.

죽음의 가치?
이경해 열사가 스스로 몸에 칼을 긋고 돌아가셨다. 배달호 열사는 온몸이 불타는 고통속에서 돌아가셨다. 김주익 열사는 밥을 끌어 올리던 동아줄에 목을 감고 돌아가셨다. 더 멀리 가면 전태일 열사도 스스로의 목숨을 민중들에게 받치셨다. 가깝게는 허세욱 열사가 FTA반대를 외치며 산화하셨다. 수많은 열사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 민중들에게 무엇인가 깨닫게 해 주셨다. 그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그나마 이만큼 성장해 왔다. 그리고 그분들의 생각에 우리는 눈물짓지 않았는가. 가슴이 찢어질 만큼 고통스럽고 슬퍼서 그들이 바라던 새로운 세상을 위해 살고 있지 않는가.

                            대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오늘 오전에 또 한명의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몸을 팔게 강요받던 여대생은 그 사실에 비관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생들이 목숨을 버린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그들의 죽음은 그저 용기없는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라 치부하기는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화가 난다.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었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분명히 따로 있다. 난 많은 대학생들의 죽음을 강요한 것은 현재 MB정부와 썩을대로 썩은 보수층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자 대학만을 원하는 이 나라 모든 대학 당국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더 이상 죽지 말자, 아니 죽이지 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죽어가고 있다.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에 6명씩 죽는다. 수많은 농민들은 비료 값이 오르고 쌀값이 떨어지고 값싼 외국 농산물이 들어올 때마다 죽어 나간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매년 오르는 등록금에 죽는다. 경제위기를 연일 부르짖고 있지만 기업의 곶간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서민의 주머니는 비어가는데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그리고 우리들의 몫
이츠키(男)가 죽고 그 흔적을 따라 가는 이츠키(女)는 그가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아픈 가슴을 진정시키고 한방울의 눈물을 흘린다. 아오이가 남긴 러브레터를 본 토모야는 대성통곡을 한다. 죽음인지 알면서도 택시에 올라타는 이안의 눈에도 한가득 고여 있는 눈물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여운에 관객들은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삶은 영화와 다르다. 소중한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같이 아파해야 한다.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물로 끝이 나지만 우리의 삶은 그 눈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친구들의 죽음을 무가치하게 두지 말자. 안타깝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영화 속 죽은 이들은 남은 자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눈물로 남겠지만, 현실 속 우리들의 삶은 죽은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투쟁으로 올곧게 세울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세워야 한다.

 

러브 레터
감독 이와이 슌지 (1995 / 일본)
출연 나카야마 미호, 사카이 미키, 카시와바라 다카시, 토요카와 에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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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여신
감독 쿠마자와 나오토 (2006 / 일본)
출연 이치하라 하야토, 우에노 주리, 아오이 유우, 사사키 쿠라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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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 온리
감독 길 정거 (2004 / 영국, 미국)
출연 제니퍼 러브 휴이트, 폴 니콜스, 톰 윌킨슨, 다이아나 하드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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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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