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3.05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그들을 분열시킨 것은 누구인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켄 로치 감독 2006년작)

 

영국?

 

우리가 아는 영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베컴의 왼발과 해리포터, 신사의 나라, 축구의 종주국 등. 이상하게도 미국보다는 영국이 좀 더 착해보이지 않은가? 물로 20세기 초 동인도회사를 필두로 전세계 수많은 제 3국을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착취했던 제국주의의 그림자도 보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인가? 글쎄. 별로 신경이 안가는 나라 아니던가?

 

아일랜드? 잉글랜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국에게 점령당한 아일랜드 청년들의 저항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테러집단 중 하나로 알고 있는 IRA(아일랜드 공화군)에 뛰어든 의사청년 다미안과 IRA의 지역지도자였던 그의 형 테디에 대한 비극이다. 영화는 평화롭고 잔잔한 아일랜드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해서 그들이 서로 대립하고 죽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시선은 아일랜드의 청년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켄 로치는 영국인이다. 다시 말해, 영국인이 스스로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인 것이다. 그러한 만큼, 그가 바라보는 1920년 아일랜드의 모습은 슬프고 괴롭고, 답답하기만 하다.

 

행복해 지고 싶어?

 

헐링(하키랑 비슷해 보인다)경기를 하던 평화로운 마을에 영국군이 난입한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는 검문을 하더니, 이름을 영어로 말하지 않는다며 어린 청년을 때려죽인다. 그리고는 웃으며 떠나간다. 이런 어이없는 영화의 시작은 아일랜드를 강제점령한 영국의 만행과 아일래드에서 일어나던 야만적인 폭압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런 가감없이. 그리고, 영화는 IRA에 들어가는 다미안이라는 청년의 시선으로 그들의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부, 행복해 지고 싶어? 라는 질문을 넌지시 던진다. 그리고 일류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고, 런던의 일류 병원에 취직을 한 다미안의 선택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결정이 옳고 그름은 영화에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결정에 넌지시 미소를 띄게되었던 나는, 행복이란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되고 또 이루어야 되는 의식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전쟁영화가 전투 장면이 많지 않다면?

 

괜찮다. 전투장면이 스팩터클하고, 사실적이지 않아도 전쟁영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라 영국에 저항하는 아일랜드인들의 투쟁을 그린 저항영화다. 간간히 등장하는 전투가 어설프다고 영화의 격을 떨어뜨리는 초딩스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의 대사 하나하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들의 논쟁을 곱씹어 보자.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를 생각했다.

 

 

아일랜드의 자치권 획득. 그리고 갈라지는 IRA

 

다미안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IRA의 지역지도자였던 자신의 형 테디이다. 그는 열개의 손톱이 빠지는 고문을 당해도 동지들을 팔지 않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일랜드 민중들을 향한, 그리고 아일랜드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열정이 식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부가 영국의 자치령으로 들어가는 조약에 합의하자 테디는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보다 먼저 나오는 장면에서, 아일랜드의 자본가의 재판장면은 이런한 테디의 선택을 예견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자치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재판은 자본가가 엄청난 이자를 받지 못해 벌어지는 것인데, 이에 아일랜드 공화국 법정은 그 자본가의 횡토를 단죄하고 벌금형을 구형한다. 많은 IRA의 성원은 그 판결을 받아드리지만, 테디는 그 자본가가 무기를 공급해주는 자금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법정의 구형을 거부하고 나선다. 독립과 자유. 민중을 향한 그들의 투쟁의 원칙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영국자치령으로 복속된 아일랜드의 자치군에 들어가는 테디는 다미안이 IRA에 남아있는 것을 못내 아쉬워 한다. 그리고 형제는 서로 대립하게 된다. 한명은 자치군으로, 그리고 다미안은 아일랜드 민중의 해방을 위한 IRA로.

 

영화의 반복. 영국군과 자치군

 

영화 시작과 동시에 영어를 하지 못해 맞아 죽은 청년의 집에 테디가 가담한 아일랜드 자치군이 들어와 영국군과 똑같은 야만적인 행위를 자행한다. 그들은 IRA를 스스로 막아내지 못하면 다시 영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때 같이 싸웠던 동지들에게 총을 들이대고 탄압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면서 과연 누가 옳았던 것인지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원칙과 타협에 대한 감독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미안이 이야기하는, 즉, 민중이 잘사는 완전 독립의 국가. 일부의 자본과 권력에 물든 이들이 맺은 자치령 조약을 거부하고, 아일랜드 민중들의 해방을 주장하는 IRA는 또 다시 힘든 싸움을 준비하려 한다. 이제 아일랜드 공화군(해방군이라 표현해도 좋다)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라, 아일랜드 자치군이 된다. 다미안이 조약 발표 이후 논쟁에서 우려한 바와 같이, 아일랜드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영국의 계략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원칙과 타협.

 

영화는 테디가 다미안을 사형시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다미안은 영국군에 잡혀 고문을 다하던 테디가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 처럼, 자치군이 테디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죽음을 선택한 다미안, 죽음의 순간 그의 거친 숨소리과 흔들리는 눈빛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분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다. 그를 죽이는 테디의 슬픔은, 동족상잔의 아픔으로 인한 슬픔이 아니라, 어리석은 길을 택한 동생에 대한 연민이다. 이 형제의 교차하는 눈물은 형상은 같더라도 그 의미는 상이하다. 원칙과 타협. 분노와 연민. 무엇이 옳은지 영화는 대답하지 않지만 이 쯤되면 테디가 싫어질만 하다. 그리고 다미안과 테디 형제의 비극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서로를 경계하는 동족의 비극. 영화는 끝나도 우리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가 이 형제를 서로 죽이게 하였는가?

 

켄 로치 감독이 영국인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구하는 것은 미국이나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암시당해 왔다. 외계인도 미국에만 온다. 영웅은 다 미국사람. 영화의 힘은 그렇게 그들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라고 그러지 않는가?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태풍] 등의 소위 반공영화의 맥은 간간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세상이 변한 만큼 그들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세련되고 더 감교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영화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보리밭은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공화군의 분열과 형제의 비극을 보여주며 테디의 선택을 원칙에서 어긋난 개량적이고 타협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진짜 분열의 이유를 조용히 보여준다. 바로 영국이라는 존재. 영국의 분열정책은 아일랜드의 적대감을 영국에서 동족으로 교묘하게 바꾸어 놓았다. 형제의 비극의 원흉은 사상이나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근본 바로 영국이라는 강대국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남과 북이 서로를 적이라 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일까? 아니, 보다 명확한 질문을 하자. 과연 누구일까?

Posted by 지풍산
: